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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어쩌다 교토를 좋아하게 됐을까

    나는 어쩌다 교토를 좋아하게 됐을까

    나에게 한국에서 좋아하는 지역을 묻는다면 나는 경주와 강릉을 꼽곤 한다.

    그중 경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문화와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고, 오래된 것들이 남아 있는 곳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화려하고 새로운 것들보다는 시간이 쌓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에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곤했다.

    아마 그래서일까.

    일본 여행을 많이 가봤지만 그럼에도 일본여행하면 제일 먼저 교토가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교토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내가 처음 교토에 갔던 때를 생각해보자면…

    그 당시 나는 정말 심하게 지쳐 있던 시기였다.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에너지도 바닥나 있었다.
    거의 2년 동안 집에만 있을 정도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정확히는 여행은커녕 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 자체가 힘겹고 버겁게 느껴졌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베프가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여행을 가자고 통보했다.

    그 친구가 정한 건 딱 두 가지.

    교토. 그리고 임박한 날짜.

    참고로 그 친구는 극P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이사항.
    베프가 말하길, 우리 둘만의 여행이 아닌 자신의 어머니도 함께 가는 여행이란다.

    친구의 어머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친부모님보다 나를 더 잘 챙겨주셔서 지금도 부모님 같은 분이시다.

    여기서 가장 환장할 노릇은 나의 베프는 자신의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

    그때의 나는 둘이 가자는 여행이었다면 아마 단칼에 안 갈 거라고 거절했을 텐데, 그 특이사항 덕에 선택이 달라졌더랬다.

    친구는 진심인지 협박인지 내가 안 가더라도 어머님과 둘이서라도 갈 거라 못을 박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들었던 난감함이란…

    친구가 극P에 어머님과의 성향 차이가 많이 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나 없는 둘만의 여행이 너무 선명히 그려졌다.

    여행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여행 계획을 정말 대충 짤 것 같은 친구가 어머님과 단둘이 처음으로 해외여행?

    와… 생각만 해도 어지러워졌다.

    일단 엄청 싸울 게 분명하고 어머님께서 엄청 고생하실 게 걱정되어 결국 여행을 승낙했다.

    결국 나는 베프가 파놓은 덫에 제 발로 걸어들어갔다.ㅋ

    그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베프를 잘 알고 있듯 베프도 나를 정말 잘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싶어 웃음이 난다.

    결국 그렇게 나는 생각에도 없었던 일본여행을 가게 됐다.

    하나 더 참고하자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행 가기 최소 세 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조금 웃긴 일이 시작된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 여행의 계획은 내가 다 짜게 됐다.ㅋㅋㅋ

    처음에는 정말 마지못해 억지로 했다. 내가 짜지 않으면 짤 사람이 없으니까.

    그때는 지금처럼 궁금한 걸 AI에게 물어보면서 쉽게 쉽게 할 수도 없었다.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찾아보고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막상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하니 조금씩 달라졌다.

    다른 나라는 좀 가봤지만 처음 가보는 일본이었고, 처음 가보는 교토였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인지 찾아보다가 또 다른 곳이 궁금해졌고, 하나를 알아보면 또 금세 궁금증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시작했던 여행 계획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조금씩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전적으로 친구에게 “어디가 가고싶어? 뭐가 먹고싶어?” 하다가

    “이것도 궁금한데? 여기도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계획은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

    아무런 의욕도 없어 죽은 듯 집에만 박혀있던 사람이, 어느새 여행지에서 뭘 할지 찾아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첫 일본여행을 준비했다.

    그때만 해도 일본에서 인터넷을 쓰려면 도시락 와이파이 기기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크고 무겁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몇 년 뒤 처음 eSIM을 사용해서 일본에 갔을 때는 그게 그렇게 신기했었다.

    “세상 많이 좋아졌네. 이제 이런 것도 되는구나ㅋㅋㅋ”

    시간이 흐르는 만큼 참 많이도 달라지는 것 같다.

    그 속의 나도 참 많이 달라졌다 느낀다.

    재밌는 건 그 첫 교토 여행을 다녀온 계기로 나는 조금씩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아마 그때 그 친구가 나를 꺼내주지 않았다면, 내가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을 거란 생각을 한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베프에게 여행을 오자고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베프가 내게 돌려준 대답을 나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같이 와줘서 내가 더 고마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여행은 내게 단순한 첫 일본여행이 아니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된 여행이었고, 지치고 힘든 내 곁에 이런 친구가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그때는 몰랐다.

    그 여행을 시작으로 내가 교토를 몇 번이나 다시 찾게 될 줄은.

    처음에는 친구에게 끌려가다시피 갔던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본에 갈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교토가 떠올랐다.

    아마 내가 교토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그곳의 풍경이나 역사, 고즈넉한 분위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역시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지금도 교토를 생각하면 단순히 “좋은 여행지”라는 생각보다 조금 더 복잡한 감정이 든다.

    어쩌면 교토를 갈 때마다 문화니 역사니 그런 것들은 다 그저 취향에 따른 핑계들뿐일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던 곳이니까.

    사실은 그게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교토를 좋아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교토는 몇 번이고 더 가게 될지도.

    처음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갔던 나의 베프에게는…
    아직도 늘 무엇이든 내가 대신 계획을 짜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ㅋㅋㅋ